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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문화人&스토리] TBC 싱싱고향별곡 '기웅아재' 한기웅 씨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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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05 17:21 조회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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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방송 1만명 넘는 어르신 만나, 그분들 덕에 인간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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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전 논에서, 밭에서, 덕장에서 쌓인 한 주의 피로를 떨치는 어르신들의 단잠을 깨우는 이가 있다. 11년째 TBC '싱싱고향별곡'을 진행하는 한기웅 씨다. 마을 어귀부터 들리는 북소리에 어르신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 어느 동네에서든 '어무이' '아부지' 하며 다가가는 그의 구수한 사투리 추임새에 어르신들의 웃음주름이 더 깊게 팬다. 매끄러운 진행은 유재석을 뛰어넘고, 붙임성으로 치면 강호동은 저리가라다. 그런 그에게 그늘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건 아는 이가 드물다. '기웅아재'의 웃음 뒤에 숨어 있던 반전과 일상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2002년, 대전에서 편지가 왔다. 기웅 씨가 국민학교 2학년이던 해 집을 나갔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TV에 출연한 아들을 한 번에 알아봤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떠올렸던 아버지를 25년 만에 만날 기회였다. 꼭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갈 수는 없었다. 고정 프로그램이 있어도 수입은 형편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머뭇거린 사이 보름이 지났다. 또 편지가 왔다. 아버지는 "와서 아들이라고 말만 해달라"고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친한 형에게 500만원을 빌려 무작정 대전으로 갔다. 월세가 2년 8개월이나 밀린 아버지의 판잣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다. 천식과 결핵을 오래 앓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깡마른 노인을 만났다.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보고, 낯선 사람을 뒤쫓아 붙잡아봐도 만날 수 없었던 아버지.

경남 거창에 아버지가 계실 곳을 마련했다. 가족에겐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남았을지도 모를 누구에게도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렵게 만난 아버지는 겨우 14년 만에 불귀의 객이 됐다. 큰아들은 남보다 빨리 철이 들었다. 독립심과 자존감. 아버지의 부재가 낳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 장남이 기죽지 않게 보이스카우트에 가입시켜 주셨다. 어머니가 폐암`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2 때였다. 천붕지통도 현실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어머니 시신을 업고 택시를 탔다. 세탁비를 달라고 한 택시기사에게 화가 난 나머지 욕을 하고 행패를 부렸다.

"내겐 어머니였지만 그에겐 시신일 뿐이었겠죠. 시간이 흐르니 누구나 저마다 사정,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일이든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수식어가 붙었다. 소년 가장.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두 동생을 거느린 소년 가장은 공부보다 돈이 급했다. 학교를 관뒀다.

"두 동생은 가시가 되어 주었어요. 제가 옆길로 새지 않도록 붙잡아줬죠."

하룻밤 술값이 동생의 한 달 차비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황하던 소년은 동생 학비를 벌고자 핸들을 잡았다. 매일 현금을 만졌고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지만, 평생 택시 운전에 매달리고 싶진 않았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파출소 방범, 현장 근로자 통근, 건설 자재 배달…. 극단에서 시간을 쪼개 연극 연습을 하는 게 그나마 낙이었다. 임시 일자리를 전전하던 그에게 그럴듯한 제의가 들어왔다. 1988년 '동양도자기'에 입사했다. 전국에서 밥그릇을 가장 많이 팔았다. 삶은 빠르게 안정됐다.

◆어무이 뭐하시능교

1995년 TBC대구방송이 개국했다. 콘셉트에 맞는 진행자가 필요했던 때였다. 연극 무대의 그를 지켜본 친구가 '주부체험'이라는 프로그램에 그를 추천했다. 얼떨결에 리포터가 됐다.

'한번 해보자.' 그러나 성주 촌놈에게 방송을 위한 '서울말'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다. 그만의 방식, 사투리로 진행하고는 일상으로 돌아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또 연락이 왔다. 몇 번 더 카메라 앞에 섰다. 방송은 부업일 뿐이었다. 시골마을에서 노래자랑 프로그램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항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고 했다.

"고맙십니데이."

그 말 한마디가 기웅 씨의 인생을 바꿨다. '세상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릇 회사를 관두고 방송에 '올인'했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싱싱고향별곡'은 2008년 5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였다. 약전골목에서 빌린 옷 한 벌로 시작해 올해로 11년째에 접어들었다. 객지로 간 자녀는 TV를 보다가 고향을 떠올리거나 안부전화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인이 된 부모님을 만난다.

기웅 씨는 매주 수십 가구가 모여 사는 리(里) 단위 마을로 간다. 포맷은 단순하다. 어르신들은 숨겨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꾸밈없는 매력은 덤이다. 뜨거웠던 청춘을 회상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깨춤을 추기도 한다. 마을회관일 때도 있고, 어르신댁일 때도 있고, 축사일 때도 있다. 과수원길을 가로지르기도, 논 한가운데 퍼질러 앉기도 한다.

10년간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 보니 웬만한 가정사는 묻지도 않고 꿰뚫는다. 그는 "방치된 밭을 보면 '바깥양반이 안 계시겠구나' 하는 직감이 있어요. 평생을 바쳐 일군 밭을 포기하는 농군은 없거든요"라고 했다.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1만 명도 넘는 어르신을 만났다. 기웅 씨의 바람은 '평범한 위인들'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다.

"모르는 동네에 시집가 아이 낳고 살아온 어머니들, 장남`장손만 아니었어도 큰 뜻을 펼칠 수 있었던 아버지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바뀌었어요. 진정한 고수죠. 한 분, 한 분이 귀한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훌륭한 인생의 말로치고는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제 역할은 그분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언젠가 죽음을 맞닥뜨릴 때 누군가가 훌륭하게 살았다고 말해준다면 덜 두려운 길이 되지 않을까요?"

물건도, 자리도, 남의 것을 부러워해 본 적 없다는 그가 단 한 가지 부러워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부모님과 함께 오붓하게 식사하는 자리였다.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어르신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그에겐 오히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넉살 좋게 말을 받아주는 그에게 어르신들은 모두 부모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부르지 못한 '어무이, 아부지…'.

"그렇게 해보고 싶었겠죠."

◆어르신들 덕분에 인간됐어요

"구름에 떠다니는 일이잖아요. 불러주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 게다가 연필로 치면 몽당연필인데…."

이틀을 연달아 쉬어 본 적이 없다. 2박 3일이 걸리는 '싱싱고향별곡' 녹화, TBC 프로그램 진행, 노래 교실, 행사`축제 진행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여기까지 오는 데 23년이 걸렸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재능을 쓸 수 있는 곳엔 어디든 갔다. 단편영화에 출연하고 퓨전 재즈 음반까지 냈으니 그의 직업은 어림잡아 10가지쯤 된다. 어려울 때 기꺼이 손 내밀어 주고, 믿어준 가족과 동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라고 했지만, 그는 원래 끼가 많은 사람이다. 지난해 말에는 오페라에서 그의 매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송년 오페레타 '박쥐'에서 감초 캐릭터 '프로슈' 역할을 맡았던 그는 생방송으로 단련된 재치로 하나된 소리를 만들어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생각도 못했어요. 오페라 무대에선 핀 마이크가 없더라고요. 멀고 먼 객석까지 제 목소리가 안 들릴 것 같았어요. 2막에서 힌트를 얻어 능청스럽게 '고향의 봄'을 연주해달라고 했어요."

익숙한 선율에 관객은 '떼창'으로 답했다.

그의 휴대폰 바탕화면에는 사과 사진이 있다. 사과 한 개를 먹을 때까지 수없이 가지를 다듬어야 하듯 '오늘은 어떤 전지작업을 해야 할지'를 새기기 위해서란다. 울지 않고 웃은 덕분에 남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길을 가다 보면 터널이 나와요. 터널에 갇힌 것 같아도 더 가면 지나갈 수 있어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 삶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때가 와요. 그때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 행복이겠죠."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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